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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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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조선상고사]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200p-201p ​3.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 왜(倭)는 일본의 본 이름이다. 지금 일본이 왜와 일본을 구분하여 왜는 북해도(北海道) 아이누족이요. 일본은 대화족(大和族)이라고 하지만 일본 음에 화(和)와 왜(倭)가 같으니, 일본이 곧 왜임이 분명하다. 저들이 근세에 와서 조선사나 중국사에 쓰인 ‘왜’가 너무 문화 없는 흉포한 야만족임을 부끄럽게 여겨 드디어 화(和)란 명사를 지어낸 것이다. ​ 백제 건국 이후까지도 왜가 어리석고 무지하여, 저 본삼도(本三島:일본 국토를 이룬 세 섬, 곧 본주(本主)・사국(四國)・구주(九州))에서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생활을 할 뿐이고 아무런 문화가 없었는데, 백제 고이왕이 그들을 가르쳐 인도해서 봉직(縫織)과 농작(農作)과 그 밖의 백공(百工)의 기예를 가르치고, ..
[신채호 조선상고사] 백제 왕손 서동(薯童)과 신라 공주 선화(善花)의 결혼 제3장 동서전쟁 ​ 1. 백제 왕손 서동(薯童)과 신라 공주 선화(善花)의 결혼 ​ 244-247페이지 ​ 기원 6세기 후반 백제 위덕왕(威德王) 중손 서동(薯童)은 준수한 도련님으로 삼국 안에서 크게 이름이 났었고, 신라 진평왕(眞平王) 둘째 따님은 삼국 안에서 가장 어여쁜 아가씨로 이름이 났다. 그런데 진평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몇을 낳은 가운데 둘째 따님 선화가 꽃같이 어여쁘므로 가장 사랑하여 “신라 왕 된 것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선화 아버지 된 것이 나의 자랑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왕은 늘 선화를 위해 사윗감을 구했는데, 서동 이름을 듣고는 선화 남편으로 희망하였고, 위덕왕은 증손 서동을 위해 증손부감을 구했는데, 또한 선화 이름을 듣고 서동 아내로 희망했다. ​ 가족 제도 시대라, 한 가정..
[신채호 조선상고사] 장수왕의 음모와 위병(魏兵)침입 2. 장수왕의 음모와 위병(魏兵) 침입 ​ 215-216 ​ 이때 중국은 황하(黃河) 남북으로 갈려 곧 위(魏)와 제(齊) 두 나라로 분립했다. 위는 곧 선비족 탁발씨(拓跋氏)로, 모용씨(慕容氏) 연(燕)을 대신하여 일어난 나라인데, 그 세력이 대단히 커져서 그즈음 유일한 강국으로 치게 되었다. ​ 그런데 장수왕은 남쪽 네 나라 동맹으로 백제를 정복할 수 없으므로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신랄한 수완을 부려 제3국이 먼저 백제를 격파하게 하고 자기는 그 뒤에서 이익을 거두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황금과 명주(明珠) 10되를 위왕에게 보내 주다가, 3년 만에 사신 예실불(芮悉弗)을 빈손으로 위왕에게 보냈다. 위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예실불이 “사비(泗沘)” 부여에는 황금산이 있고 섭라(涉羅:지금 ..
[신채호 조선상고사] 신라건국 130-134 3. 신라건국 여태까지 학자들이 모두 “신라사가 고구려와 백제 두 사보다 비교적 완전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아주 모르는 말이다. 고구려사와 백제사는 삭감이 많거니와, 신라사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사료로 근거 삼을것이 매우 적으니, 이제 신라 건국사를 말하면서 이를 대강 논술하려 한다. 신라 제도는 6부(部) 3성(姓)으로 지직되었는데, 신라본기에 따르면, 6부는 처음에 알천양산(閼川楊山)・돌산고허(突山高墟)・무산대수(茂山大樹)・자산진지(觜山珍支)・금산가리(金山加利)・명활산고야(明活山高耶) 여섯 마을이었는데, 신라 건국 제3세 유리왕(儒理王) 9년(기원32년) 여섯 마을 이름을 고치고 성을 주었다. 알천양산은 급량부(及梁部)라 하고 성을 (李)로 하였으며, 돌산고허는 사량부(沙梁部)라 하고..
[신채호 조선상고사]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200p-201p 3. 광개토대왕의 왜구 격퇴 왜(倭)는 일본의 본 이름이다. 지금 일본이 왜와 일본을 구분하여 왜는 북해도(北海道) 아이누족이요. 일본은 대화족(大和族)이라고 하지만 일본 음에 화(和)와 왜(倭)가 같으니, 일본이 곧 왜임이 분명하다. 저들이 근세에 와서 조선사나 중국사에 쓰인 ‘왜’가 너무 문화 없는 흉포한 야만족임을 부끄럽게 여겨 드디어 화(和)란 명사를 지어낸 것이다. 백제 건국 이후까지도 왜가 어리석고 무지하여, 저 본삼도(本三島:일본 국토를 이룬 세 섬, 곧 본주(本主)・사국(四國)・구주(九州))에서 고기잡이와 사냥으로 생활을 할 뿐이고 아무런 문화가 없었는데, 백제 고이왕이 그들을 가르쳐 인도해서 봉직(縫織)과 농작(農作)과 그 밖의 백공(百工)의 기예를 가르치고, 박사 왕인..
[신채호 조선상고사] 수두 홍포(弘布)와 문화 발달 수두 홍포(弘布)와 문화 발달 1. 부루(夫婁)의 서행(西行) 에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하우(夏禹)를 도산(塗山)에서 만났다’고 하였고, 또 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으니 ‘당요(唐堯)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져서 당요가 하우(夏禹)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였다. 우(禹)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남악(南嶽)・형산(衡山)에 이르러 흰 말(白馬)을 잡아 하늘에 제사 드려 성공을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玄夷)의 창수사자(蒼水使者)라 일컫고 우에게 “구산(九山) 동남쪽 도산(塗山)에 신서(神書)가 있으니, 석 달 동안 재계(齋戒)하고 그것을 꺼내 보라” 말하므로, 우가 그 말에 따라 금간옥첩(金簡玉牒)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五行通水)의 이치를 알아 ..
[신채호 조선상고사] 고구려시대 선배 제도, 태조왕, 차대왕 시대 2. 태조왕・차대왕 시대 선배 제도 고구려의 강성함은 선배제도 창설로 비롯된 것인데 그 창설한 연대는 옛 사서에 전해지지 않으나, 조의(皂衣)의 이름이 태조왕 본기에 처음으로 보였으니, 그 창설이 태조・차대 두 대왕 때가 됨이 옳다. 선배는 이두자로 ‘선인(先人)’‘선인(仙人)’이라 쓴 것으로서, 선(先)과 선(仙)은 ‘선배’의 ‘선’음을 취한 것이고, 인(人)은 ‘선배’의‘배’뜻을 취한 것이니, ‘선배’는 원래 ‘신수두’교도의 보통 명칭이었는데, 태조왕 때에 와서 해마다 3월과 10월 신수두 대제에 모든 사람을 모아, 또는 칼로 춤을추고, 또는 활도 쏘며, 또는 앙감질도 하고, 또는 태껸도 하며, 또는 강의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물싸움도 하고, 또는 노래하고 춤을 추어 그 잘하고 못함을 보며, 또..
[ 신채호 조선상고사 ] 고구려 건국 이야기 2. 고구려 일어남 (1) 추모와의 고구려 건국 ... 생략 ... 추모가 이를 알고 예씨(禮氏)에게 장가들어 겉으로 가정생활에 안심하고 있음을 보이고 속으로는 은밀히 오이(烏伊)・마리(摩離)・협보(陜父) 세 사람과 공모하여, 비밀리에 어머니 유화에게 작별을 고하고 아내를 버리고는 도망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갔는데, 이때 추모의 나이 22살이었다. 졸본부여에 이르니 이곳의 소서노라는 미인이 아버지 연타발(延陀勃)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서, 해부루왕의 서손(庶孫) 우태(優台)의 아내가 되어, 비류(沸流)・온조(溫祚) 두 아들을 낳고 우태가 죽어 과부로 있었는데 나이 37살이었다. 소서노는 추모를 보자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였는데, 추모는 그 재산을 가지고 뛰어난 장수 부분노(扶芬奴) 등을 끌어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