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메모리 직접 제조 나선 중국…"삼성급 반도체 기업 만든다"
M&A로 진입 예상 깨고 '조기 양산' 도전
"기술격차 있지만 정부 지원 업고 약진할 것"
중국이 한국 산업의 마지막 보루, 메모리반도체에 출사표를 던졌다. 해외 반도체업체 인수합병(M&A)을 통해 진출할 것이란 예상을 뒤집고, 600억위안(약 10조7000억원)을 투입해 자국 내에 직접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이미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이른바 한국의 전통 주력산업은 중국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산업도 중국의 ‘묻지마 투자’로 제품 값이 폭락해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은 이제 20년 이상 세계 1위를 지켜온 메모리반도체에서도 중국과 기약 없는 치킨게임을 벌여야 할 판이 됐다.
○중국, 메모리 공장 직접 짓는다
중국이 반도체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건 반도체 수입이 매년 급증해서다. 반도체는 2013년 원유를 제치고 중국의 1위 수입품이 됐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반도체를 ‘7대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정해 육성해왔다. 지난해엔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면서 1200억위안(약 2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사업 추진의 총대를 멘 곳이 칭화대 산하 칭화홀딩스에 속해 있는 칭화유니그룹이다. 칭화유니는 2013년 중국 업체인 스프레드트럼 등을 인수해 중국 최대 반도체 설계 업체로 도약했다. 지난해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추진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지난 9월 말 웨스턴디지털을 인수하고, 웨스턴디지털이 낸드플래시 업체인 샌디스크를 사들임으로써 메모리업체 우회 인수에 성공했다. 샌디스크는 낸드업계 2위인 일본 도시바와 50 대 50 투자로 낸드 라인 3개를 운영 중이다.
칭화유니는 또 이달 대만의 후(後)공정업체 파워텍 인수를 확정했고,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제조하는 대만 미디어텍 인수를 추진 중이다. 미디어텍은 AP시장 3위 업체로 삼성보다 시장점유율이 높다. 최근 대만 D램 업체인 이노테라의 이사장이자 난야의 대표를 맡아왔던 가오치취안도 영입했다.
이처럼 차곡차곡 진입 준비를 해온 칭화유니는 지난 5일 직접 메모리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 위해 칭화유니 자회사 퉁팡궈신이 추진하는 800억위안 유상증자엔 칭화유니 계열사와 자오웨이궈 칭화유니 회장이 설립한 투자회사가 참여한다. 이 가운데 메모리 공장 건설에 쓰겠다는 600억위안이면 300㎜ 웨이퍼 기준으로 월 12만장 규모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첨단 라인 1개 건설이 가능하다. 지난해 완공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17라인과 비슷한 규모다. 칭화유니 웹사이트에는 중국 1위, 세계 3위의 반도체기업이 되겠다는 목표가 적시돼 있다.
○메모리업계 치킨게임 가능성
한국 메모리업계는 그동안 중국의 직접 생산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이미 10나노대 앞선 공정기술을 가진 데다 최근 1개 메모리 라인의 건설비가 15조원을 넘을 정도로 큰 자본이 필요해서다. 하지만 중국은 주사위를 던졌다.
업계에선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평가한다. 중국이 짓겠다는 메모리 공장도 기껏해야 30~40나노대 D램 범용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박영주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공장을 짓는 데만 수년이 걸릴 것이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으려면 10년까지도 봐야 한다”며 “이미 10나노대 D램 기술과 3차원(3D) 낸드 등을 생산하는 한국 업체들을 따라잡으려면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 유진투자증권 IT·디스플레이 팀장은 “D램 등 메모리는 결국 원가싸움인데 중국 기업들은 정부 자금을 써 금융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며 “공장 건설에 시간이 걸리고 공정기술도 못 따라오지만 정부 지원으로 버티면서 몇 년 내에 수율(투입량 대비 양품의 산출비율)만 잡으면 무섭게 부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액정표시장치(LCD)산업에서 중국 BOE 등은 투자금의 80~90%를 정책자금에서 조달해왔다. 현재 BOE 등의 부상으로 국내 디스플레이업계는 LCD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혼란도 불가피하다. 2012년 일본 엘피다 파산 이후 D램업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회사로 재편됐다. 낸드업계도 삼성전자 도시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4개 업체가 시장의 90%를 지배해왔다. 이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신규업체의 시장 진입으로 공급량 증가는 불가피해졌다. PC에 이은 스마트폰 시장 정체로 D램 값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공급 증가는 폭락을 부를 수도 있다.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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