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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걸핏하면 중도하차…'임시 계약직'된 CEO·CIO

걸핏하면 중도하차…'임시 계약직'된 CEO·CIO

입력 2015-11-06 19:07:25 | 수정 2015-11-07 03:04:19 | 지면정보 2015-11-07 A15면


국민연금·KIC 수장, 초유의 동시 공백 사태

"국민자산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 
지난해 역대 최대 성과 낸 안홍철 KIC 사장 "물러나겠다"
10년간 임기 채운 사장 1명뿐  
홍완선 국민연금 CIO는 기재부 평가 1위에도 사퇴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이 임기를 1년2개월 남겨 놓고 6일 정부에 사의를 밝혔다. 그는 “일신상의 사유”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KIC 안팎에서는 “야당의 사퇴 공세를 더 이상 견뎌내기 힘겨웠던 것 같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도 야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안 사장 사퇴를 종용했다는 후문이다. 안 사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폄훼했다는 이유로 임기 초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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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억달러 더 벌고도 중도하차 

안 사장의 중도 하차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금(국민연금)과 국부펀드 수장이 모두 공석인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국민연금공단의 최고경영자(CEO)인 최광 이사장도 지난달 ‘기금운용본부장 월권 인사 파문’으로 자진 사퇴했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 등 정부의 주먹구구식 인사관행과 자산운용전문기관에 대한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이 국민들의 자산관리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KIC는 지난해 역대 최고의 투자 성과를 냈다. 총자산수익률(통화바스켓 기준)이 10.03%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부여한 목표 수익률(벤치마크)을 131bp(1bp=0.01%) 웃돌았다. 지난해 KIC의 순자산(861억달러)을 감안하면 목표치보다 11억달러(약 1조2700억원)를 더 벌었다는 의미다. 2013년 안 사장 취임 전후 KIC의 초과수익률은 △2011년 -90bp △2012년 66bp △2013년 108bp 등으로 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

하지만 안 사장 사퇴는 이 같은 경영실적과는 무관한 이유로 결정됐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는 “안 사장 사례처럼 투자 성과나 기금 관리와는 무관한 외부 요인으로 CEO나 최고운영책임자(CIO)를 교체하는 것은 중장기 자산 운용에 큰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교체가 결정된 것도 투자 성과와는 무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2014년 기재부 기금 평가에서 1위에 올랐다. 2013년엔 5위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홍 본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태 초기 복지부는 최 전 이사장에게 사실상 홍 본부장 유임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었다. 

○해외는 성과 기준으로 임기 결정 

업계는 두 기관 CEO의 잇따른 낙마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과 KIC를 상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 자본시장의 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10년 이상 장기투자 전략을 짜는 이들 기관의 특성을 감안할 때 CEO 임기(3년)가 지나치게 짧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임기를 채운 사례도 많지 않다. KIC는 2005년 출범 이후 10년간 임기를 채운 사례가 진영욱 전 사장이 유일하다. 평균 임기는 2년에 불과했다. 


반면 해외 글로벌 국부펀드나 대형 연기금들은 철저하게 투자 성과를 기준으로 임기를 결정한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 노르웨이투자청(NBIM)의 윙베 슬륑스타 대표는 2008년부터 8년째 CEO를 맡고 있다. 해외 대표 연기금으로 평가받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1999년 설립 이후 배출한 CEO가 세 명에 불과하다. 마크 와이즈먼 CEO는 3년째 재직 중이고 전임 CEO는 7년6개월간 근무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나 KIC처럼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의 CEO는 법과 제도가 정한 원칙에 따라 인사를 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익 전 KIC 투자운용본부장은 “투자 기관의 특성상 큰 과오가 없으면 연임을 당연시하는 관행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동욱/고경봉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