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라

(2)
[신채호 조선상고사] 백제 왕손 서동(薯童)과 신라 공주 선화(善花)의 결혼 제3장 동서전쟁 ​ 1. 백제 왕손 서동(薯童)과 신라 공주 선화(善花)의 결혼 ​ 244-247페이지 ​ 기원 6세기 후반 백제 위덕왕(威德王) 중손 서동(薯童)은 준수한 도련님으로 삼국 안에서 크게 이름이 났었고, 신라 진평왕(眞平王) 둘째 따님은 삼국 안에서 가장 어여쁜 아가씨로 이름이 났다. 그런데 진평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몇을 낳은 가운데 둘째 따님 선화가 꽃같이 어여쁘므로 가장 사랑하여 “신라 왕 된 것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선화 아버지 된 것이 나의 자랑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왕은 늘 선화를 위해 사윗감을 구했는데, 서동 이름을 듣고는 선화 남편으로 희망하였고, 위덕왕은 증손 서동을 위해 증손부감을 구했는데, 또한 선화 이름을 듣고 서동 아내로 희망했다. ​ 가족 제도 시대라, 한 가정..
[신채호 조선상고사] 신라건국 130-134 3. 신라건국 여태까지 학자들이 모두 “신라사가 고구려와 백제 두 사보다 비교적 완전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아주 모르는 말이다. 고구려사와 백제사는 삭감이 많거니와, 신라사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사료로 근거 삼을것이 매우 적으니, 이제 신라 건국사를 말하면서 이를 대강 논술하려 한다. 신라 제도는 6부(部) 3성(姓)으로 지직되었는데, 신라본기에 따르면, 6부는 처음에 알천양산(閼川楊山)・돌산고허(突山高墟)・무산대수(茂山大樹)・자산진지(觜山珍支)・금산가리(金山加利)・명활산고야(明活山高耶) 여섯 마을이었는데, 신라 건국 제3세 유리왕(儒理王) 9년(기원32년) 여섯 마을 이름을 고치고 성을 주었다. 알천양산은 급량부(及梁部)라 하고 성을 (李)로 하였으며, 돌산고허는 사량부(沙梁部)라 하고..